Hi, how are you?

Thu, 09 Jan 2014 16:31:10 +0000
I'm pretty good. Thanks for asking.
Comments (1)

Faithfulness

Tue, 02 Jul 2013 00:26:57 +0000
어두 컴컴한 천둥번개가 치던
온몸을 시원케하는 실바람이 불어도

숨쉬기위해 울부짓는 갓난아기와
마지막 숨을 기다리는 노인에게도

최첨단을 달리는 아키하바라에서도
타조가 달리는 사라하에서도

출근하는라 가득찬 아침 지하철과
평온한 노을진 백사장 저녁때에도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기에
나 또한 신실히 주님을 예배하리라

- 聖文金디모데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21편
Comments

Amateurism

Mon, 11 Feb 2013 23:26:40 +0000

얼마전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서 일반인들이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쉬워지고 있다. 예를 들어 카메라 기술은 지난 수년 사이에 급속도록 발전하여 f-stop이나 shutter speed등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벽에다가 걸어도 괜찮은 사진들을 찍어 낼 수 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싸진 고 기능의 hardware와 Picasa나 iPhoto같이[1] 쉽게 색을 보정할 수 있는 software의 결합은 아무나 프로 다운 수준의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속히 말하는 democratization through technology (기술발달에 의한 평준화?)의 좋은 예이다.

Inline image 1

이러한 현상에 대해 프로들은 2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 째는 이러한 democratization은 사진의 artistic value와 professionalism을 싸구려 (cheapen)로 만든 다는 견해이다. 원하는 한 샷을 만들어 내기위해 많은 노력과 땀을 흘리는 프로들의 작품들의 가치를 더 이상 인정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프로들이 democratization을 경멸하는 것도 위 만화 같은 comment들 때문이다.

반면에 좋은 사진이란 매체에 입문할 수 있는 벽이 낮아졌다며 좋아하는 긍정적인 프로들도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사랑하는 매체를 공유할 수 있다면 좋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내 아내에게 물어본것이다. 바이올린 선생님으로서 내 아내는 바이올린이란 매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consumer가 아닌 producer로서 음악을 사랑할 수 있게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비싼 레슨을 거치지 않고 음악을 만들어 내며 즐길 수 있다면 자신은 행복 할 것 같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평준화 때문에 음악 선생님들과 프로들의 가치가 떨어진다면 참 힘들 것 같다고 한다.

인터넷과 컴퓨터의 발달로 인해 꼭 사진과 음악뿐만 아니라 비디오, 라디오, 게임, 저널리즘등등 모든 프로들에게 한정된 매체들을 produce하는 것이 보편화 되고 평준화 되어 가고있다. 내 생각엔 이러한 현상들이 현존하는 프로들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수의 사람들이 위 만화가 풍자 하는 것처럼 프로들을 낮게 볼 수 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프로들의 대한 appreciation은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항상 소수가 시끄러운 법이다.[2]

[1] I almost said Instagram.

[2] 뭐야 결론이 왜이래?

Comments (2)

It's only Thursday

Thu, 07 Feb 2013 21:39:57 +0000
아버님의 입원 소식으로 시작한 2월 두번째 주. 엄마의 수술 소식. 그리고 친구의 죽음 소식. 이제서야 목요일 되었다.

Soul searching이라고 하면 좀 거창한가? 내가 왜 이 땅에 존제하는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고 하는 것도 cliché인가? 생각이 많이 복잡하다.

나의 career goal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해 존제한다고 하는것을 끼워 마추어나가는 것은 아닌지, 일터의 문제에 있어 나의 discipline의 문제인지 진정 일터의 문제인지, 나의 가족을 향한 사랑이 아닌 내가 지금 가지고있는 돈의 액수에 나의 behavior가 결정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본다.

수 많은 inspirational speech와 글들을 읽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내 모습에 실망하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내 속마음을 겨우 겨우 힘들게 털어놓을 수 있는 내 모습에 또 실망하며 이러한 생각 가운데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 실망한다.

이제서야 목요일이다...
Comments (3)

This is a second post from GMail.

Wed, 06 Feb 2013 23:57:47 +0000
Yay!
Comments

Test Post from GMail

Wed, 06 Feb 2013 23:35:17 +0000
This is a test post from GMail.

This is a new paragraph.

This is an image:

Inline image 1
Comments

Dialog

Sun, 26 Feb 2012 05:08:41 +0000

"Hey, so what do you think?"

"It's ok. I guess."

"Are you even looking? What's up with you man?"

"Nah, it's nothing."

"Hey, if you got something on your mind, just let it out."

"Don't worry about it."

"Man, how can I not worry now?"

"My bad man. I really don't wanna talk about it."

"Find, alright. Hope everything turns out ok."

"Yeah, thanks."

"No prob, man... So. What do you think?"

"..."

Comments (1)

Close

Sun, 24 Jul 2011 02:56:44 +0000

가족이 가까운 곳에 살았으면 하는 밤이다...

Comments (2)

No more love.

Sun, 17 Jul 2011 02:32:25 +0000

사랑하기 싫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 또한 너무 지쳐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연약한 모습이 너무나도 밉습니다.

미움의 말들과 증오의 생각들이 떠오를 때마다
내 자신을 아직 너무 사랑하고 있구나
하며 더욱 좌절 합니다.

차라리 사랑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내 자신에게도 실망할 필요 없으며

가족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마음 아파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상처 주지 않아도 될 것이며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오늘 밤도 모두가 편히 잠에 들 수 있을 텐데요.

그래서

사랑하기 싫습니다.

바보같은 생각이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싫은 것을 어떻할까요?

...

디모데 없에기 라이프롱 프로젝트...

Comments (3)

Patience

Fri, 01 Jul 2011 15:06:18 +0000

마음이 조급합니다.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너무 많을 것을 잃을까봐 두렵습니다.

하지만 참고 기다립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다 외치고 싶지만

숙연이 기도하렵니다.

외롭고 혼자인 것 같지만

함께 기다리며 기도하여 주니

너무 고맙습니다.

Comments

All Alone

Wed, 29 Jun 2011 10:59:56 +0000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음에 힘이듭니다.

...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감정뿐이라고 말 할 수 있지만

감정을 넘어서 사랑해 주고 싶습니다.

...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해 줄 수 없기에

너무 힘이 듭니다.

Comments

Perspective

Thu, 09 Jun 2011 16:31:58 +0000

신실함.

서로 섬김이 넘쳐 이웃을 섬길 수 있는 사람.

가족의 축복.

같은 물질관, 세계관, 신앙관.

어느정도의 attraction.

...

Comments (2)

Flawed Humans

Wed, 25 May 2011 13:34:24 +0000

왜 이렇게도 약하게 만드셨나요

왜 이렇게도 악한 것일까요

왜 이렇게도 바보 같나요

왜 이렇게도 아플까요

왜 이렇게도

왜...

Comments (2)

Fearless

Tue, 10 May 2011 13:41:47 +0000
Tue, 10 May 2011 13:42:50 +0000

세상의 유혹이 엄습하여도
나의 삶은 내 것이 아니기에
두려울 것 없습니다

어둠의 파도가 밀려와도
굳건한 반석위에 서 있으니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누가 손가락질 하여도
피의 샘물에 내 몸 씻었으니
당당하게 나아갑니다

사단의 공격에 힘겨워 넘어져도
주님의 은혜안에 있으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저 감사할 것 뿐입니다

- 聖文金디모데

Comments (2)

Enemy

Wed, 04 May 2011 04:51:46 +0000
Sat, 07 May 2011 02:42:10 +0000

"I mourn the loss of thousands of precious lives, but I will not rejoice in the death of one, not even an enemy. Returning hate for hate multiplies hate, adding deeper darkness to a night already devoid of stars. Darkness cannot drive out darkness: only light can do that. Hate cannot drive out hate: only love can do that." - Martin Luther King, Jr ?? [1]

난 수천명의 죽음을 놓고 슬퍼하지만 한 명의 죽음 때문에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그 한명이 적일지라도. 증오를 증오로 값는것은 별하나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이 더 어두어지는 것같이 증오를 더하게 한다. 어두움을 어두움으로 절대 밀어내지 못한다. 오직 빛만이 할 수 있다. 증오는 증오를 없엘 수 없다. 오직 사랑만이 할 수 있다. - 마틴루터킹 목사 ?? [1]

Osama Bin Laden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늦은 저녁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백악관 앞에 모여서 "USA USA"를 외치며 즐거워 했다고 한다. 2001년 9월 11일 미국땅에 테러범들의 공격이 있은지 건 10년 후 일어난 일이다.


Picture source

어제저녁 Twitter통해 Osama Bin Laden이 미국군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백악관 앞에 모인 사람들과 같은 기쁨은 커녕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시원하다는 느낌 무엇인가 종결 되었다는 느낌도 없었다. 신문과 뉴스방송의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보도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겼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많 았았지 우리가 마치 승리하였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사설가들의 모습은 잘 이해가 안갔다.

9/11사태에 잃은 가족이나 친구가 없어서 그런가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그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그 공격 때문에 잃은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9/11이후 극도로 양극화 되어버린 미국의 정치판. 보안이라는 가면속에 시민들의 권리를 우롱하는 공항절차. 중동인을 향한 인종차별. 테러와에 전쟁이란 이름 아래 아프간과 이라크에 쏟아부은 수많은 젊은 생명. 그리고 따라온 14조 달라의 빚. 그 날 3000명의 생명말고도 Bin Laden이 앗아간 이 많은 것들이 그의 죽음 하나로 복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의 죽음을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얼굴을 찌푸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한 더 큰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한 영혼의 죽음을 놓고 기뻐하는 모습이 나로서는 받아드리기 너무나도 힘이 든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였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싶어하시는 대상이다. 한 영혼이 예수님을 모르고 죽었다면 어찌 기뻐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우리가 그의 죽음을 놓고 기뻐하는 모습은 테러범들이 9/11사태이후 기뻐하는 모습과 과연 무엏이 다를까 궁굼하다. 앞서 적은 Martin Luther King Jr. 목사님의 말씀이 와 다았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이라면 과연 Bin Laden의 죽음을 놓고 기뻐할 수 없지 않아야 할까 싶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래 개개인의 삶을 놓고보면 이 일을 놓고 어떻게 반응해야하는 지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적인 차원을 놓고 생각해보면 문제는 조금더 까다로와 진다.

많은 때에 교회에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곤한다. 특히 미국교회들은 미국이 초대 청도교인들의 초심을 잃고 하나님에서 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고 이야기 하며 나라와 정치인들을 위해 기도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모든 결정을 기도로서 하나님의 편에서서 내릴 수 있게 기도하며 미국땅이 하나님께로 돌아설 수 있게 기도한다.

이렇게 기도할 때 마다 난 의문이 생긴다. 과연 기독교국가라는 것이 무엇인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는 말씀을 국가적인 차원에선 어떻게 지켜야 한단 말인가? 교회와 국가의 분리는 하나님이 원치않는 것일까? 더 실질 적으로 9/11사태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예수님을 믿는 리더는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인가?

도대체 한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게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이번 Bin Laden의 죽음을 통해 다시한번 이러한 질문 들이 내 머리속을 가득했다. 하지만 이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예전부터 성경을 수없이 뒤져보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여 보았지만 시원한 답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성경은 대신 한 영혼에 포커스를 마춘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한 영혼이란 단위로 사역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잃어버린 양 한마리, 보이지 않는 누룩, 녹아 없어져야 하는 소금, 작은 겨자씨, 돌아온 막내 아들. 이 것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 내려고 할 때 그 결과는 우리는 역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천주교가 정치적인 힘으로 복음을 전하려 했을 때 부정과 부패가 남발 하였고 국가적인 무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갈려고 했을 때 십자군은 너무나 많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

그래서인지 한국이 기독교 때문에 축복받았다 혹은 미국 정부가 기독교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과연 그것이 하나님이 뜻한 것인지 의심을 하게된다.

잘 모르겠다. 오사마를 죽인것이 잘 한것인지 나라를 위해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지는 생각조차 하기 싫다.

하지만 한가지. 한 영혼이 하나님에겐 얼마나 중요하며 고귀한 존제인지는 확실하다. 그러기에 오사마의 죽음을 앞에 마음이 찝찝한거 같다.

쩝...


[1] 킹 목사님이 한 말씀이 아니라는 소문이... :(

Comments (1)

Writing

Wed, 27 Apr 2011 18:57:33 +0000
Thu, 28 Apr 2011 13:06:28 +0000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많은 부탁을 한다는 것은 나를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 많은 부탁중에 상당수를 차지하는 부탁은 글짓기에 관한 것이다. 학교에 재출해야 하는 엣세이, 혹은 비지니스 편지, 기술적인 문서, 이력서 등등 다양한 종류의 문서를 교정해달라는 부탁은 물런 그냥 글짓기에 관한 과외를 해달라는 부탁도 많이 받는다.

(솔직히 수학이나 기술적인 것에 더 능통한 나에게 영어를 조금더 잘 구사한 다는 이유만으로 글짓기에 관한 부탁을 더 많이 받는 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점에 있다. 머리속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고는 있지만 막상 그것을 글로 표현 하려고 하면 뭐라고 써야할지 막막하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난 항상 이렇게 묻는다.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에요?" 그러면 십중팔구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해 준다. 그러면 난 이렇게 답한다. "그냥 그렇게 쓰시면 되요."

사람들은 글이라는 매체보다는 말이라는 매체에 더 익숙해 한다. 당연한 사실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의 말을 듣고자라나며 대부분의 삶을 듣고 말하는 행위를 통해 소통한다. 말에 비해 글을 사용하는 시간은 현져이 낮을 것이다.

라디오, 티비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의 등장은 사람들이 글과 친숙해질 수 기회를 더 뺏어갔다. 대졸자중 죽을 때까지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거이 반이라는 사실[1]은 얼마나 사람들이 글이라는 매체와 멀어졌는지 잘 알려준다. 다행이 인터넷과 비디오게임[2]의 등장으로 그래도 글을 사용하는 빈도수는 어느정도 오를 것 같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글과 친숙하지 않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을것같다.

더 비참한 사실은 책을 많이 읽고 어느정도는 정기적으로 글쓰는 연습을 하는 나도 글로 내 마음을 표현 하는데는 터무니없이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비록 기술적이거나 논쟁을 해야하는 글을 술술 써나갈 수 있지만 내 마음의 상태나 내 감정을 글로 쓰기엔 너무나도 힘이든다.

아마도 이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닌것 같다. 감정이라는 것 자체를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은 글이라는 매체의 한계가 아닐까? 지금까지 수많은 작가들과 시인들이 사랑과 이별의 감정에 대해 지겹도록 글을 써왔지만 오늘날에도 한달에도 수백가지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글들이 출판되는 것은 감정을 글로 만족스럽게 표현하기 불가능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주절이 주절이 글을 쓰는 이유도 지금 내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어떻게 글로 표현 할지 몰라서 인지도 모르겠다.

싱숭생숭한 이 마음을 어떻께 표출 해야 할까?

결국엔 기도라는 매체밖에 없단말인가?

--

[1] http://www.humorwriters.org/startlingstats.html

[2] 그렇다. 내가 영어를 이정도로 구사할 수 있는 이유는 90년대 RPG게임들 때문이다.

Comments (3)

이른 봄

Thu, 24 Mar 2011 05:31:10 +0000
Thu, 24 Mar 2011 05:32:42 +0000

봄이라고 하기엔 칼같은 추위
매서운 비와 천둥이 하늘 가득
과연 봄이 온 것인지 의심케 한다

하지만 새싹이 돋아나며
꽃망울이 터뜨려지기 위해선
봄철 폭풍우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단비라고 하는 이 봄비는
내 살갗을 찌르는 춘한으로 다가와
봄을 보지 못하게 나로서 눈멀게 한다

- 聖文金디모데

Comments (3)

Selflessness

Mon, 21 Mar 2011 15:25:47 +0000
Mon, 21 Mar 2011 15:36:19 +0000

Betrayal

1996년 1월 12일

그때 당시 비디오게임 제작사로서 가장 명성이 높았던 Square copmany는 지난 21년동안 함께해온 Nintendo와의 관계를 끊고 차세대 Final Fantasy VII 게임을 Sony의 PlayStation 게임기에 개발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거이 망해가던 Square를 살려준 Nintendo의 플랫폼을 져버리고 단지 Nintendo가 선택한 cartridge format이 충분하지 않는 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신을 때리고 만다. (첫 Final Fantasy 게임은 망해가는 Square의 마지막 작품이 되리라는 생각에 이름을 "Final"이라고 지은 것이다.)

물런 기술적인 이유과 경영적인 요소를 생각해 보았을땐 탁월한 선택이였다. 하지만 당시 어린 나의 마음에는 크나큰 배신으로 느껴졌다. 골수 Nintendo팬인 나에겐 (뭐 지금도 팬이지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이였다. 어떻게 Nintendo가 지금까지 해준 그 큰 일들을 져버리고 게임에대한 열정도 없는 전자제품 회사인 Sony에게 Final Fantasy를 줄 수 있는지 난 분노하였다.

그 분노의 결과로 Nintendo와 Square에게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편지를 쓴 기억이 난다. Square에겐 Nintendo를 떠나지 말라고... Nintendo에겐 Square를 어떻게하든 잡으라고...

당시 Final Fantasy의 차기작이 Nintendo 64에 발매되리라고 굳게 믿어 그 게임기를 사려고 돈을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Square사의 발표로 인해 그 돈으로 Nintendo 64 대신 Final Fantasy가 나올 PlayStation을 사야할지 엄청 고민을 했다. 하지만 Nintendo를 나까지 버릴 수 없다 생각했다. 그래 Square. Sony랑 잘 살아봐라. 분명 망할 것이다. 결국 Nintendo에 돌아 오리라. 이렇게 저주를 하며 죽어도 절대 PlayStation을 안사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그리고 1997년. Final Fantasy VII은 드디어 Sony PlayStation에 발매가 되고 천만부가 팔리면서 역사상 가장 잘 팔리는 게임이 되었다. (현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은 Wii Sports로서 7천 6백만부가 팔렸다.) 게임 평론가들과 게임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게임을 극찬했다. 하지만 난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나에겐 Nintendo뿐이였다.

1998년... 1년간의 Final Fantasy VII의 유혹은 너무 심했었다. 화려한 그래픽, 그 어느 영화를 능가하는 큰 스케일의 스토리, 섬세한 케릭터 디자인... 2년전 배신의 아픔을 뭍고 또 다시 돈을 모아 PlayStation을 구입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Final Fantasy 세계에 빠지게 된다. Nintendo에게 나 역시 배신했다는 죄책감을 안은체...

지금 돌아보면 참 바보같다. Nintendo이던 Square이던 다 자기 회사의 이윤과 수입을 놓고 모든 결정을 내리고 경영을 하는 것이지 그 어떠한 sense of loyalty는 없다. 그런데도 어린 마음에 Nintendo사에게 마음을 쏟았었고 Square사에 상처를 받았던 나의 모습. 참 순수했었다.

Self Serving

이 세상에 있는 모는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 그 것이 회사라는 단체를 통해 나타나던 개개인의 모습이던 상관없이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진다.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삶은 정 반대의 삶을 요구한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또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야하는 기독교인의 삶.

순수하게 보였던 그때 그 모습도 나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모습에 행동한 것이 아닌가 싶다. Nintendo를 위하는 마음에서 Square를 저주한 것도 self serving한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내가 Nintendo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분노한것이니까 말이다. 또 다르게는 결국엔 Sony PlayStation을 구입하고 Final Fantasy VII을 즐기는 모습을 보아도 얼마나 내 자신의 쾌락을 위해 행동하였는지 알 수 있다.

요즘들어 많은 고민을 하고있다.

내 마음을 따라 행동하고 싶은 마음과 그 마음을 접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대립하여 싸우고 있다.

내 마음을 따라 행동하는 쪽에서 생각할 때면 사랑이란 단어로 selfless하다고 자신에게 말하며 새 출발 하는 것이야 말로 내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self serving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새 출발을 해야겠다는 의지 쪽에서 생각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난 포기하는 것이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self serving하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논쟁을 펼치고 있다.

두 생각다 서로 이기적이다고 하면서 싸우고 있지만 결국엔 두 모습 다 self serving하며 이기적이다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 조차도 내 자신이 안식과 평안을 누리기 위해 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엔 어떻게 생각하던 내 모습 다 이기적인 것 같다.

There's something really really wrong with this line of thought.

사단이 주는 마음인 것 같다. 자아를 버리는 것 남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목적을 악용하여 죄책감이라는 족쇄에 내 발목을 붙잡혀 그 어느 방향으로도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자신을 사랑할 줄 하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법인데도 말이다.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Comments (3)

Why

Mon, 28 Feb 2011 00:35:47 +0000

당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일 때
나의 모습은 한없이 작아지는 것은 왜일까요

아무런 의미없는 눈 맞춤에
나의 심장이 얼어 버리는 이유는 왜일까요

당신의 웃음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
나의 마음속엔 미안한 마음만 생기는 것은 왜일까요

아무리 나의 마음이 찢어진다 하여도
머리속엔 온통 당신 걱정 뿐인 것은 왜일까요

- 金聖文

Comments (1)

How goes it?

Thu, 24 Feb 2011 17:01:05 +0000

오늘 친구가 Google Talk을 통해 나에게 물었다.

How goes it?

그 질문에 난 이렇게 답했다.

It seems to go, without regards to life
Mercilessly, it flows, towards the end, with much strife
Yet, I stand still, hoping to grasp a bit of now
Tho' my legs are still shackled in the past's tow

그러자 친구의 답

your glass is half empty and the day you need to seize
get on your sogettings and become a sleaze

역시 아픔이 있어야 좋은 글이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성경처럼 아름다운 글들이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즉흥적으로 쓰는 시, 너무 재미있다. :)

Comments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