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
Secular vs. Christian Government
미국에 살면서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종교가 특히 기독교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가지각색의 의견이 있다는 것을 알것이다. 크게 둘로 나누자면 하나는 정부가 미국 청도교들의 초심에서 벗어나 너무나 세속화 되버렸다는 의견이 있고 또 하나는 정부에 기독교가 미치는 힘이 위헌적으로 강하다고 외치는 자들이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고 추측이 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현존하고 있는 정부는 하나이다. 그 정부가 세속화 되었던지 아니면 종교의 영향에 움직이고 있던지 둘중 하나이지 절대 둘 다 일 수 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부 종교인들은 정부의 세속화를 외치고 좌파에 치우친 사람들은 종교가 정부에 너무나 큰 힘을 가하고 있다고 두가지의 외침의 소리가 가능한 것일까?
Vantage Point
누굴 몰래 좋아하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러한 감정이 어릴때 가진 순수한 마음이던 성인이 되어서 갖는 진지한 마음이던 한번쯤은 다 격어 보았을 것 같다. (아님 말고... -_-;; ) 어쨌든 재미있는 것은 누굴 좋아하는 그 감정 때문에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왜곡 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감정이 강하면 강할 수록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사고 능력은 현저하게 하락한다. 특히 좋아하는 대상의 행동을 너무 지나치게 분석해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해 버리곤 한다. 예를 들면 상대가 보여주는 예의 상의 간단한 친절도 부풀려 상상해 자기에게 향한 호감으로 착각 하던지 아님 반대로 아무런 의미없는 통상적인 쌀쌀함(?)을 확대해서 생각해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나만 그런가?? ㅋ)
참 안타까운 사실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위해서는 (적어도 남자는) cool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성(理性)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더 효과적일 텐데 그러지 못하니 말이다. 넓게 바라보고 객관적으로 판단 할 수 있을 때 탁월한 선택이 가능한데 감정에 휩싸인 짝사랑에선 그러한 vantage point을 얻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다.
Controlling Emotion
하나의 같은 사건을 바라보면서 완전히 다르게 해석이 가능한 인간의 성품. 그것이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이던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안목이던 상관없이 이러한 주관적인 해석들은 자신의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나오는 presumption (증거는 없지만 사실일 것이라고 추정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러한 presumption은 감정이 격하면 격할 수록 더해 지는 것 갈다.
진실은 하나이다. (Post-modernism이 외치고 있는 pluralism은 불가능 하다.) 하지만 진실을 얻기까지 걸어야 하는 여정중 감정이란 안개는 사람을 제자리에서 빙빙 돌게한다. 적어도 나의 짧은 30년 인생 가운데서 나의 길을 가장 많이 흐리게 한 요소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매번 힘이 들때마다 하는 기도도 "하나님 감정을 없에주세요" 아니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주세요"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도 마져도 버리고 싶다. 나의 감정까지도 하나님께 다 맡기고 싶다. 더이상 나의 힘으로는 이 감정의 안개를 걷힐 수 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며 나아가고 싶다.
참 ironic하다. 장성한 사람처럼 성숙해 지기 위해서는 어린아이 같이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
Loading Comments...